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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중고 거래 뒤의 이야기, 현관 앞에서 시작되는 물건의 구술사 동네 중고 거래는 늘 짧게 끝난다. 약속 시간, 정가, 위치를 주고받고, 현관 앞이나 지하철 입구에서 물건과 돈이 오간다. 그런데 그 몇 분을 조금만 늘리면 다른 문이 열린다. 물건의 전생이 말을 시작한다. 스크래치 난 기타가 거쳐 간 무대, 얼룩이 남은 소파에서 처음 뒤집기를 했던 아이, 잘 닦인 접시 위를 지나간 생일 초의 불빛. 중고 플랫폼은 값싼 거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네의 작고 개인적인 역사들이 조용히 모이는 기록 창고이기도 하다. 오늘은 로컬 중고 거래에서 만난 물건들의 전생을 주인들에게 듣고 기록하는 방식, 그 의미, 그리고 실제 같은 사례들을 모아 한 편의 구술사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듣는가: 가격표 뒤에 달린 시간의 가치중고 거래는 흔히 실용의 영역으로 묶인다. 더 이상 .. 2025. 8. 27.
실패 전시회: 창작의 민낯 기록 완성본만 늘어놓는 공간에서는 배움의 길이 짧아진다. 사람들이 박수치는 순간만 모이면,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시도와 오판, 망설임이 사라진다. 오늘은 창작의 실력은 성공의 총량이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기술에서 자라며, 그래서 이 글은 완성물이 아니라 실패 초안과 스크랩을 전시하고 그로부터 배운 점을 공유하는 실패 전시회의 철학과 설계, 그리고 한 달 운영법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1) 왜 실패를 전시하는가: 기술·학습·문화의 관점실패 전시는 기술을 디버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완성본만으로는 어디서 길을 잘못 든 순간이 보이지 않지만, 초안과 스크랩에는 결정의 전후 사정이 남는다. 어떤 가정을 세웠고 어떤 선택지가 있었고 왜 그때 다른 길을 택했는지가 흔적으로 드러난다. 전시는 그 흔적을 정리.. 2025. 8. 25.
사라지는 말 vs 태어나는 말의 교차점 : 정의 ‘가이 없다’와 ‘에바’가 만날 때 동네 어르신과 제트세대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사실 의견이 아니라 단어다. 한쪽은 “가이없다”라고 혀를 차고, 다른 쪽은 “그건 좀 에바”라고 웃으며 선을 긋는다. 뜻은 얼추 비슷한데, 말의 무게와 온도, 그리고 관계를 맺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언어는 언제나 두 가지 힘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는 사라지는 말의 관성, 다른 하나는 태어나는 말의 추진력이다. 오늘은 지역 방언·옛말과 제트세대 신조어를 의미·톤·관계라는 세 좌표로 나란히 놓아 보고, 둘이 스치는 지점에서 어떤 오해가 생기고 어떤 합의가 가능한지 살핀다. “정”이라는 한국적 감각을 실처럼 꿰어, ‘가이없다’와 ‘에바’가 같은 문장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1) 의미의 지형: .. 2025. 8. 24.
커피집이 품은 초안들: 동네 카페가 창작·관계의 거점이 되는 조건 탐구 한 동네 카페의 구석 자리. 아직 이름도 없는 팀이 노트북 두 대와 두꺼운 스케치북 하나를 펼쳐 놓고 목소리를 낮춘다. 벽면에는 동네 합창단의 연습 시간표가 붙어 있고, 카운터에는 “오늘의 재생목록: 빗소리와 잔잔한 기타”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보인다. 바로 이곳에서 다섯 팀의 데뷔가, 서로 다른 계절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태어났다. 카페는 단지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초안들이 안전하게 머무르다 세상으로 나가는 항구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에서 비롯된다. 오늘은 동네 카페가 창작과 관계의 거점이 되기 위한 조건을 공간, 운영, 관계의 세 축으로 나눠 탐구하고, 마지막에는 “한 카페, 다섯 팀의 데뷔”라는 실제 같은 기록을 통해 구체적 풍경을 그려 볼수 있도록 알아보겠.. 2025. 8. 24.
김치와 타말레가 같은 테이블에 오를 때 : 이주·다언어 가정의 문화 혼합과 새로운 의례 집 안에서 언어, 음식, 명절이 스며드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 온 노래 가사가 식탁에서 흘러나오고, 어른들이 전화로 쓰는 말투가 거실 공기를 바꾸며, 냉장고에는 고추장 옆에 옥수수 잎 포장이 나란히 놓인다. 이주·다언어 가정은 이처럼 서로 다른 습관과 기억이 한 지붕 아래로 들어오면서, 매일의 행동을 다시 짜 맞추게 된다. 그리고 그 반복의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집안 의례가 태어난다. 의례는 거창한 의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매주 토요일 같은 시간에 전화로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 것, 생일에 꼭 두 언어로 축하 노래를 번갈아 부르는 것, 첫 한 입을 누구에게 건네는가 같은 사소한 규칙도 모두 의례다. 오늘은 언어, 식탁, 명절이라는 세 축을 따라, 다언어 가정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 2025. 8. 23.
창작과 멘탈 케어의 균형: 번아웃·자기검열·비교불안을 다루는 문화적 습관 창작의 균형은 에너지, 주의, 의미라는 세 축이 동시에 맞물릴 때 유지된다. 의지 부족이 아니라 구조의 부재가 소진과 불안을 키우므로, 작업 방식은 기분이 아니라 설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오늘은 먼저 균형이 무너지는 구조를 밝히고, 다음으로 균형을 회복하는 문화적 습관을 제안하며, 마지막으로 “좋아요 숫자 대신 관계 지표로 버틴 한 달”이라는 운용법을 단계별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왜 균형이 무너지는가: 에너지·주의·의미의 엇박자창작이 흔들리는 1차 원인은 에너지의 누수다. 수면이 짧고 식사와 운동이 불규칙하면 같은 일을 해도 더 많은 의식적 힘이 필요해진다. 이 상태에서 작업량을 밀어붙이면 번아웃, 즉 심신의 소진이 가속된다. 해결은 근성의 동원이 아니라 생활 리듬의 조정이다. 일정한 기상·취침.. 2025.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