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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타말레가 같은 테이블에 오를 때 : 이주·다언어 가정의 문화 혼합과 새로운 의례

by 시작하는 하나 2025. 8. 23.

 

집 안에서 언어, 음식, 명절이 스며드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워 온 노래 가사가 식탁에서 흘러나오고, 어른들이 전화로 쓰는 말투가 거실 공기를 바꾸며, 냉장고에는 고추장 옆에 옥수수 잎 포장이 나란히 놓인다. 이주·다언어 가정은 이처럼 서로 다른 습관과 기억이 한 지붕 아래로 들어오면서, 매일의 행동을 다시 짜 맞추게 된다. 그리고 그 반복의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집안 의례가 태어난다. 의례는 거창한 의식만을 뜻하지 않는다. 매주 토요일 같은 시간에 전화로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 것, 생일에 꼭 두 언어로 축하 노래를 번갈아 부르는 것, 첫 한 입을 누구에게 건네는가 같은 사소한 규칙도 모두 의례다. 오늘은 언어, 식탁, 명절이라는 세 축을 따라, 다언어 가정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의례의 탄생과 변주를 알아보겠습니다.

 

김치와 타말레가 같은 테이블에 오를 때 : 이주·다언어 가정의 문화 혼합과 새로운 의례
김치와 타말레가 같은 테이블에 오를 때 : 이주·다언어 가정의 문화 혼합과 새로운 의례

언어가 만드는 집안의 새로운 의례

다언어 가정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의례는 호칭과 호흡의 규칙이다. 누군가를 부를 때 어느 언어를 쓰는가, 감사나 사과를 어느 말로 표현하는가가 자연스레 정해진다. 예컨대 아빠에게는 한국어로 “아빠”라고 부르면서도, 외가 식구에게는 스페인어식으로 번역된 별칭을 쓴다든지, 전화 통화가 걸려오면 첫 인사는 늘 한국어, 마무리 인사는 스페인어로 하는 식의 반복이 자리 잡는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뒤섞여 보이지만, 가족이 안정감을 느끼는 리듬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그 말의 흐름은 하나의 의례로 굳는다.

아이의 언어 발달도 의례를 낳는다. 잠들기 전 책을 읽어 줄 때, 한 쪽 페이지는 한국어, 다음 페이지는 다른 언어로 번갈아 읽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아이가 특정 단어를 두 언어로 동시에 말하고 싶어 할 때, 어른들이 그 혼합을 금지하기보다 “이 단어는 이렇게 두 말이 다 예쁘다”라고 확인해 주는 말걸기 역시 집안 규칙이 된다. 이런 확인의 문장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 언어의 우열을 서열화하지 않겠다는 가족의 선언이며,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게 실수할 수 있는 공간을 여는 장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의례는 번역의 권리와 순서다. 외가 쪽 모임에 영상통화를 연결할 때, 누가 통역을 맡는지, 어려운 표현이 나오면 어떻게 바통을 넘기는지가 매번 비슷하게 재현된다. 어떤 집은 어른이 맡고, 어떤 집은 아이가 가족의 공식 통역사로 성장한다. 이 역할은 단순한 언어 기능을 넘어, 가족 안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상징적 권한이 된다. “이 말은 내가 더 잘 설명할 수 있어”라고 나서는 순간, 아이는 자신이 두 문화 사이의 다리를 놓고 있다는 자부심을 얻는다.

물론 충돌도 생긴다. 한 언어의 농담이 다른 언어로 옮겨지지 않을 때, 대화의 리듬이 끊기거나 누군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때 도움이 되는 건 요약의례다. 대화 중간중간 “지금 이런 이야기를 했어”라고 짧게 정리하는 습관, 이해가 어렵다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면 곧바로 설명이 따라오는 약속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시간을 조금 더 들이지만, 대화의 공동 소유권을 가족 모두에게 돌려준다. 다언어 가정의 언어 의례는 그래서 포용의 장치다. 익숙한 말만 빨리 달리는 대신, 서로 다른 속도로 걷는 사람들을 기다려 주는 속도 조절법이기 때문이다.

식탁 위의 공존 : 김치와 타말레가 만나는 상차림 의례

“김치와 타말레가 같은 테이블에 오를 때”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메뉴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식재료, 조리법, 상차림, 식사 예절이 서로의 의미를 비벼 만드는 과정이다. 주말 장보기를 떠올려 보자. 쌀가게에서 햇쌀을 고르고, 라틴 식료품점에서 옥수수 가루와 향신료를 산 뒤, 동네 시장에서 배추와 마늘, 고춧가루를 챙긴다. 이 동선 자체가 이미 가족의 루틴이자 의례다. 집으로 돌아오면 부엌은 두 세계의 향으로 가득 찬다. 김치 양념의 매운 향과 찐 옥수수 잎의 구수한 냄새가 동시에 퍼지는 순간, 가족은 “오늘 우리 집에선 두 기억이 함께 끓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한다.

상차림에도 새로운 규칙이 생긴다. 타말레를 찢어 김치와 함께 먹을 때는 젓가락과 포크가 동시에 놓이고, 소스 그릇 옆에 참기름과 라임 조각이 나란히 선다. 누군가는 타말레 위에 김치를 올리고, 누군가는 김치찌개에 옥수수 빵을 곁들인다. 어떤 조합은 실패하고 어떤 조합은 대성공을 거둔다. 실패를 다루는 방식도 의례가 된다. “오늘 레시피는 수정이 필요하네”라고 웃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태도, 성공한 조합은 바로 손글씨로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두는 습관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축적된 집안 메뉴 기록장은 세대를 지나며 전통이 된다.

식탁에서 오가는 인사와 감사의 말도 변주된다. 식사 기도를 두 언어로 번갈아 하거나, “잘 먹겠습니다”와 “맛있게 드세요”에 해당하는 표현을 모두 소리 내어 말하는 의식이 매 끼니를 열고 닫는다. 조리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김장철에는 친척들이 모여 절이기, 헹구기, 버무리기를 나누듯, 타말레를 만들 때도 반죽 치대기, 속 재료 준비, 옥수수 잎 말기를 아이들까지 맡아 나눈다. 손을 쓰는 일이 많을수록 식탁의 소속감은 커진다. “이 맛은 내가 만든 맛”이라는 자부심이 가족 모두에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음식 혼합은 때로 건강·신념의 차이와 맞닥뜨린다. 채식이나 종교적 금기를 지키는 가족 구성원이 있을 때, 한 상에서 각자의 기준을 존중하는 표식의례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채식 타말레에는 파란 꼬치, 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에는 빨간 꼬치를 꽂아 두는 식이다. 누구도 본의 아니게 금기를 어기지 않도록 색깔, 위치, 그릇 형태로 신호를 만드는 이 작은 장치는 서로에 대한 배려를 눈에 보이게 만든다.

음식은 결국 기억의 그릇이다. “이 조합을 처음 먹던 날의 대화” “처음으로 친정아버지가 타말레에 김치를 얹어 보고 고개를 끄덕이던 표정” 같은 서사는 나중에 가족이 다시 모였을 때 꺼내는 이야기감이 된다. 이야기 자체가 또 하나의 의례가 된다. 특정 메뉴가 올라오면 반드시 그날의 일화를 한 사람씩 덧붙이는 규칙, 사진 한 장을 꺼내어 순서대로 돌아가며 설명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그렇게 식탁은 단지 영양을 채우는 장소를 넘어, 가족의 다층적 정체성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무대가 된다.

달력의 재구성 : 명절과 통과의례의 혼합

명절은 문화 혼합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주는 캔버스다. 음력 설과 추석, 감사절과 겨울 축제,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날(스페인어권의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에 해당하는 기념일)처럼 각 문화가 소중히 여기는 날들이 한 집의 달력에 겹쳐진다. 문제는 날짜가 겹치거나, 의미가 달라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 유용한 것은 달력의 재설계 의례다. 해마다 연말이면 온 가족이 모여 다음 해 달력을 펼쳐 두고, 각자의 중요한 날에 형광펜으로 표시한다. 겹치는 날에는 우선순위를 논하고, 가능하다면 아침·낮·저녁으로 시간을 나눠 두 기념을 모두 챙길 구획을 만든다. 이렇게 합의된 달력은 냉장고 문 앞에 붙고, 가족의 시간표를 이끈다.

제사의 형식도 변한다. 전통 제상에 종이 장식과 꽃을 더하고, 한지에 적은 조상님의 이름 옆에 색지로 만든 깃발을 붙여 두 문화의 상징을 함께 세운다. 절하는 횟수나 순서, 기도의 내용은 양측 어르신의 조언을 받아 조율한다. 어떤 집은 조상에게 올리는 인사말을 두 언어로 번갈아 낭독하고, 다른 집은 추모가 끝나면 고인의 삶을 기억하는 이야기를 한 가지씩 보태는 시간을 갖는다. 의례의 핵심은 존중과 기억이므로, 형식을 지키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풀어 쓰는 것이 관건이다.

선물과 복장의 규칙도 새로 생긴다. 추석에는 전통 옷의 요소를 살짝 차용한 단정한 차림을 하고, 겨울 축제에는 반짝이는 색을 포인트로 더한다. 선물은 양쪽 문화에서 환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을 교차해 준비한다. 예를 들어 차(茶)와 향초, 전통 과자와 향신료 세트를 묶어 “이 선물은 우리의 두 손을 닮았다”는 메모를 붙인다. 그 메모를 가족의 공용 표현으로 삼아 매번 문구를 조금씩 바꾸는 것도 좋은 의례다. 반복되는 말은 집안의 어조가 되기 때문이다.

통과의례이름 짓기, 첫돌, 성년, 결혼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공적인 순간이다. 이름을 정할 때 한글 이름과 다른 언어권의 발음을 함께 고려해, 두 문화권에서 모두 의미가 살아 있는 조합을 찾는다. 돌잔치에는 상징물을 혼합한다. 전통 상에 올리는 물건 옆에 가족의 역사와 연결된 물건(외가의 조리도구, 이민 때 가져온 사진, 두 언어로 쓰인 그림책 등)을 함께 올려 아이의 미래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상징을 균형 있게 배열한다. 축사나 덕담은 번갈아 언어를 바꾸되, 각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설명해 주는 시간을 사이사이에 넣는다. 듣는 모두가 의미를 공유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를 의례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갈등을 피하기 위한 요령도 필요하다. 어떤 형식이 누구에게는 신성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낯설 수 있다. 이때 미리 의례 안내문을 만들어 초대장에 함께 넣는 방법이 유용하다. 복장, 음식, 진행 순서, 필요한 준비물을 간단히 그림과 쉬운 문장으로 소개하면, 손님은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알고 안심한다. 집안 어르신에게는 사전에 찾아가 변경 이유와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고, 가능한 한 그분들의 제안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을 반영해 드린다. “우리가 함께 만든 의례”라는 감각이 생기면, 변형은 모독이 아니라 진화로 받아들여진다.

 

명절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되돌아보기 의례를 갖는다.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불편했는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를 돌아본다. 이를 간단한 기록으로 남겨 두면 다음 해에 자연스레 개선된다. 이렇게 점검하는 습관은 문화 혼합의 핵심 역량 학습하고 조정하는 힘을 가족의 체질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문화 혼합 의례의 목적은 상징을 섞는 데 있지 않다. 목적은 서로의 존엄을 안전하게 드러낼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언어는 느리게, 음식은 맛있게, 명절은 넓게 이 세 가지 원칙을 붙잡으면, 김치와 타말레가 같은 테이블에 오르는 날은 단지 특이한 풍경이 아니라, 서로의 삶이 한 상에서 충분히 먹을 만큼 넉넉해졌다는 증거가 된다. 가족은 그 상을 매해, 매주, 매일 조금씩 더 잘 차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