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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축제의 숨은 기획자들

by 시작하는 하나 2025. 9. 1.

축제는 무대 위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현수막에 이름이 박히는 이는 몇 명뿐이고, 대부분의 시간과 감정은 뒷골목과 단체 채팅방, 창고 구석과 비닐천 아래에서 흘러간다. 동네 축제와 마을극이 매해 모양을 달리하며 다시 열리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의 그물이 촘촘해서다. 표에 잡히지 않는 그물의 결을 더듬어 보면, 축제는 행사가 아니라 관계를 재배열하는 기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오늘은 로컬 축제의 숨은 기획자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컬 축제의 숨은 기획자들
로컬 축제의 숨은 기획자들

사람과 네트워크의 그물

현수막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

오전 아홉 시, 시장 입구 철문을 올리는 소리가 축제의 첫 큐 사인이다. 상인회장이라고 불리는 분의 키는 작고 걸음은 빠르다. 전날 저녁에 빌려온 접이식 테이블 열두 개가 시장 안쪽 통로에 줄지어 서 있고, 문구점 사장은 가격표 대신 안내표를 인쇄하느라 새벽까지 프린터를 돌렸다. 동 주민센터의 주무관은 전기 사용 허가 공문에 도장을 받기 위해 어제 세 번이나 건물을 오르내렸고, 아파트 경비실은 택배 보관함 일부를 임시 창고로 내주었다. 동아리 학생들은 체육관에서 쓰던 스탠드를 빌려와 무대 양옆에 세우고, 동네 교회에서는 의자를 한 트럭 내보낸다. 이름이 공개되는 사람보다 공개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서로의 사정을 아는 사이여서 요청과 수락이 단숨에 오간다. 여기서 네트워크는 예의와 친분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시간 엄수, 장비 반납, 사진 제공 같은 작고 구체적인 규칙이 감정의 마찰을 줄인다. 그래서 이들은 축제를 끝내고도 다음 주에 같은 골목에서 마주칠 수 있다.

 

관계 그물의 구조

로컬 축제의 네트워크는 적어도 세 겹으로 짜인다. 첫째는 돌봄의 그물이다. 시장의 큰어머니 같은 존재, 동아리 선배, 동네 반장의 손길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들은 누가 예민한지, 누가 배려가 필요한지, 어느 집에 휠체어가 있는지 안다. 프로그램표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 배려가 이 층에서 결정된다. 둘째는 기술의 그물이다. 음향과 조명, 무대 설치와 안전 관리처럼 눈에 보이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연결된 층이다. 셋째는 자원의 그물이다. 장소를 빌려주는 학교 행정실, 차량과 인력을 내어주는 상인회, 동네 기업의 작은 후원, 광장 사용 허가를 내주는 공무 부서가 여기에 있다. 축제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이 세 겹이 서로의 언어를 번역해 주어야 한다. 돌봄의 언어는 사정을 묻고 시간을 들여 균형을 잡는다. 기술의 언어는 수치와 규격으로 움직인다. 자원의 언어는 허가와 책임을 정한다. 어느 한 층이 너무 커지면 다른 층은 움츠러들고, 균형이 깨진 축제는 표정이 굳는다.

 

마을극의 뒤편

마을극은 동네의 기억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이다. 대본은 사건을 기록하는 문서일 뿐 아니라 기억의 편집이다. 누가 중심이 되고 누가 옆에 서는지는 권력의 지형과 닿아 있다. 기획자는 이 지형을 알되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할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옛날 노랫말과 중학생이 새로 쓴 랩을 같은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장면의 호흡을 조절한다. 소품은 창고에서 꺼내지기보다 사람의 집에서 빌려온다. 낡은 주전자 하나가 그 집의 시간을 데려와 장면을 살린다. 조명은 밝게 비추는 대신 빛을 덜어 그림자를 남긴다. 배우의 긴장과 관객의 기대로 공간이 팽팽해질 때, 기획자는 무대 뒤 어둠에서 호흡만 맞춘다. 대사가 틀려도 장면은 넘어간다. 중요한 것은 틀림을 되돌리는 능력이 아니라 틀림을 함께 견디는 능력이다. 마을극이야말로 로컬 축제의 관계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외부와 내부가 만나는 경계

로컬 축제에는 외부 팀이 들어온다. 유명 밴드, 지역을 넘어 활동하는 공연팀, 방송 촬영팀이 들어오면 동네의 결이 흔들릴 수 있다. 기획자는 외부의 전문성과 내부의 생태를 교차시키는 통역자다. 리허설 시간과 볼륨의 기준, 사진과 영상의 사용 권한, 관객 동선의 변화 같은 항목을 사전에 합의하고, 외부 팀에게는 동네의 룰을, 내부 팀에게는 외부의 기준을 알린다. 외부 팀이 내는 환대의 제스처 하나가 내부 팀의 자긍심을 살리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경계의 장면이야말로 축제의 얼굴이 찍히는 순간이다.

 

함께 기획자가 되는 방법

관객이 기획으로 한 걸음 들어오는 순간 축제는 주민의 것이 된다. 관객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년의 프로그램 제안을 받아 보고, 올해 쓴 예산의 요약을 공개하고, 자원봉사 신청서를 받는 대신 작은 역할을 바로 맡길 수 있다. 동네의 학생에게는 취재를, 어르신에게는 안내대의 리더를, 상인에게는 음식 부스의 가격 규칙을 논의하게 한다. 이렇게 축제는 구경거리에서 공동의 작업으로 이동한다. 이 이동이야말로 로컬 축제의 미래다.

현장 운영과 흥하는 법칙

비 오면 더 흥하는 골목 축제의 법칙

비는 행사의 적이 아니라 축제의 편이 될 때가 있다. 골목 축제는 공간이 좁고 천장이 없기에 소나기만 와도 동선이 재편된다. 그러나 바로 그 재편이 관객을 가까이 묶는다. 천막 아래로 모인 사람들은 자연스레 몸을 기울이고, 우산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같은 바닥에 모인다. 소리는 비에 씻겨 거칠게 퍼지지 않고, 천막과 건물 벽을 타고 둥글게 흘러 귀에 가까워진다. 드럼의 타격음은 젖은 공기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보컬의 호흡은 낮아진 천장에 닿아 되돌아온다. 기획자는 이 효과를 미리 알고 동선을 바꾼다. 메인 무대는 그대로 두되, 작은 공연과 체험을 천막 안쪽으로 밀어 넣어 마주 봄을 강제한다. 사인 요청 대신 짧은 대화가 생기고, 구경하던 아이는 천막 기둥에 기대 앉아 프로그램을 두 장 더 본다. 상인은 비닐봉지를 덤으로 건네고, 비에 젖은 카셋트 플레이어 소리 같은 추억이 사람들의 귀를 부드럽게 만든다. 물론 전기와 안전은 다르다. 비가 오면 전원 케이블의 높이를 올리고 드레인 라인을 미리 뚫는다. 무대 매트는 미끄럼 방지로 교체하고, 전기 테이프 위에 다시 한번 비닐을 감는다. 이 사소한 조치들이야말로 비 내린 축제를 흥겹게 만드는 진짜 기술이다.

 

갈등을 다루는 기술

축제는 소음과 통행, 쓰레기와 안전을 동네의 일상 위에 얹는다. 그러니 갈등은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이다. 기획자의 기술은 갈등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빨리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음악 소리가 크다는 민원이 오면 볼륨을 내리는 손짓보다 먼저 이름을 부른다. 누구의 어떤 시간대가 침해되었는지 듣고, 오늘만의 부탁인지 내년을 바꾸기 위한 제안인지 구분한다. 쓰레기 문제는 축제 당일이 아니라 다음 날 아침에 판가름난다. 청소 동선을 사전에 짜고, 뒷정리 인력을 예산으로 편성한다. 청소년 자원봉사 시간을 청소로 채우지 말고, 뒷정리를 오래 해 온 어른들에게 사례를 지급한다. 소음과 동선 문제는 협의서 한 장으로 풀리지 않는다. 셧다운 시간을 명확히 하고, 마지막 곡을 시작하기 전에 한 번 더 공지한다. 이 반복이 신뢰를 만든다.

 

돈의 흐름과 보상의 문법

로컬 축제는 큰돈 대신 잔돈이 많이 움직인다. 식권과 지역화폐가 가장 효율적이다. 참가자에게 식권을 나눠 상인에게 바로 돌아가게 하고, 후원은 현금 대신 상품권 형태로 받아 돌려주면 감사가 거래로 바뀌지 않는다. 무대 출연료는 적어도 교통비와 장비 운반비를 커버해야 하며, 자원봉사에게는 시간 외에 기록과 추천서 같은 다음 기회의 문을 제공한다. 보상은 금액만이 아니라 형태의 문제다. 감사장을 넘겨줄 때는 이름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적는다. 현수막에 이름을 모두 올릴 수 없다면 생략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남긴다. 소셜 채널에서 포스터 이미지만 발행하지 말고 뒷이야기를 붙인다. 관객보다 먼저 기여자를 알리는 글이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한다.

 

실전 하루의 기록 비에 젖은 성공

아침 예보가 빗방울 모양으로 바뀐 날, 기획자는 프로그램표를 조용히 수정한다. 길거리 마임은 카페 앞 벤치로, 토크 무대는 작은 갤러리로, 버스킹 두 팀은 서로의 휴식 시간을 맞물리게 한다. 전기 테이프를 한 번 더 감아 올리고 멀티탭을 바닥에서 띄운다. 장난감 같은 블루투스 스피커는 죄다 치우고, 빗물에 강한 스피커 두 개만 남긴다. 우비를 나눠주니 어린이들이 비를 신기해하며 뛰어다닌다. 공연은 짧아지고 멘트는 늘어난다. 두 곡 하고 인사하고, 소리 대신 이야기가 자리를 채운다. 관객은 줄어들지 않는다. 비는 집에 머무는 이유가 아니라 같은 천막 아래 모여 있을 이유가 된다. 끝나고 나면 젖은 케이블을 닦는 손길이 늘고, 카페는 늦게까지 불을 끈다. 다음날 오전, 축제의 성공 여부는 게시물의 좋아요 숫자가 아니라 골목 바닥의 상태로 확인된다. 젖은 종이컵이 보이지 않고 쓰레기 봉투가 정해진 자리에 모여 있다면, 그 축제는 잘된 것이다.

지속을 위한 기록과 마무리

기록의 기술이 다음 해를 만든다

축제는 해마다 다시 열린다. 잘한 기억은 과장되고 실패는 잊힌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장비 대여 목록과 반납 시간, 허가 절차의 담당자 연락처, 민원 유형과 해결 방식, 비 올 때의 동선과 전기 배치, 협업한 팀의 컨디션과 다음 약속을 문서로 남긴다. 표면의 홍보물보다 이런 기록이 다음 해의 품질을 올린다. 기록은 사람을 지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기획자가 바뀌어도 축제는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팀이 들어와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록은 보이지 않는 이름들을 역사에 남긴다. 축제의 영광은 무대 중앙이 아니라 문서의 각주에 있다.

숨은 기획자들에게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이 곧 기획의 절반이다. 동네 축제와 마을극은 예산보다 네트워크가 크고, 기술보다 돌봄이 길다. 비가 와도 흥하는 골목 축제의 법칙은 사실 간단하다. 사람을 가까이 모으고, 위험을 멀리 돌리고, 뒷정리를 끝까지 책임지면 된다. 그 일을 해온 이들의 이름은 현수막에 없을지라도 기록의 문장에 남겨야 한다. 내년에 우리가 더 잘할 방법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서로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고, 서로의 역할을 한 줄 더 적고, 서로의 실수를 한 번 더 감싸 안는 일. 축제는 그렇게 이어지고, 동네는 그렇게 깊어진다.